본문 바로가기

인물

프로이트 이론 중 실패이로과 내용들(무의식, 포르트-다 게임, 슬라보예 지젝)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모두들 잘 아는 정신분석학의 대가이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이란 영역을 최초로 규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실패이론이란 것은 무엇일까? 실패는 나쁜 것이고 부정적인 것이기만 한 것일까?

 

프로이트가 내세운 실패이론과 그 내용들

 

1. 실패이론

프로이트 실패이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프로이트는 실패를, 마구 뭉쳐진 실뭉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자기의 손주를 관찰하던 중에 발견한 놀이에 '포르트-다'라고 이름을 붙였다. 혼자서 실패를 만지작 거리며 놀던 아이가, 실패를 멀리 던지고는 '포르트'라고 외치고, 다시 잡아당겨 손에 잡고는 '다'라고 외치는 놀이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실패는 아이에게 엄마의 상징물이다. '포르트'는 '엄마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엄마가 눈 앞에서 사라지거나, 자기에게서 멀어지면 아이는 매우 슬프다. 하지만, 사실 아이에게 엄마가 사라지는 일은 '슬프다'고 표현할 정도의 감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아이의 생존이 걸린 지극히 근본적인 위협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 상황이다.  

 

 

그러다가 '다'하면 엄마가 다시 돌아왔으니, 이것도 '기쁘다'정도가 아니라 '살았다!' 그 이상의 감동과 안도감을 주는 일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2. 포르트-다 게임의 의의

 

"포르트-다"는 공포를 미리 연습하여, 그 순간의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보호기제이다. 아이는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를 상실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놀이로 상징화해 반복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는 실패, 즉 엄마를 손에 쥐고 있으니 엄마가 없더라도 다시 끌어당기면 나타난다는 통제의 능력을 놀이로나마 갖고 있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뭉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렇게 통상적인 해설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손자는 실패를 던지면서 '포르트!'라고 외치고, 실패를 받으면서 '다!'라고 외침으로써 어머니의 사라짐과 되돌아옴을 상징화했다. 

 

상황은 명백해 보인다. 아이는 어머니의 부재라는 외상적 경험이 불러일으킨 불안을 극복하고, 그것을 상징화함으로써 그 상황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실패를 어머니로 대체함으로써, 아이는 스스로 어머니의 현존과 부재를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아이의 불안은 상황을 극복했다는 즐거운 환희 속에서 성공적으로 '지양'된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은 프로이트의 표준적인 해설을 전도시킨다. '포르트-다' 게임의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폐쇄로부터 탈출하는 것에 있다. 근본적 불안은, 아이가 대타자의 향락에 사로 잡혀있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아이가 어머니의 떠나감/되돌아옴을 지배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머니를 잃어버렸다는 불안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의 압도적인 현존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거리를 확보하여 자신의 욕망을 유지시킬 수 있는 공간을 필사적으로 갈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결국 '포르트-다' 게임을 통해 어머니의 부재라는 외상을 극복한 아이 대신에, 어머니의 숨 막히는 포옹으로부터 빠져 나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열린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아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지젝의 설명을 인정한 결과, 아이는'포르'와 '다'를 즐겁게 반복하는 것 대신에, '포르트-다'라는 두 양극 사이를 불안정하게 진동한다.

 

관련 이미지

 

'포르트-다' 게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다다르면, 어느 쪽도 아이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 그리고 당신 없이도 살 수 없어와 같이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대상에 대한 욕망 때문에' 그 대상으로부터 물러나겠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욕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욕망, 바로 그것을 위해서 욕망하는 대상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궁정풍 사랑의 역설이 아니었던가? 그것이야말로 욕망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 아니었던가? 즉 ('다'의 한가운데서 '포르트'가 잔존하고 있는 것처럼, 이건 싫지만 저것도 싫어) 대상에 대한 욕망 때문에 대상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욕망 그 자체의 가장 근본적인 역설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