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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싱이 가장 강했던 60년 ~ 90년대 초까지 그 이야기


한국 프로 복싱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과거 다이나믹한 스포츠의 대명사로 불렸던 복싱, 그 전성기는 60년대말 ~ 90년대 극초반까지이다.  그 당시에 프로복싱이 미국과 일본 그 다음에 한국 프로복싱일 만큼 인기도 많았고 잘 나갔다고 한다.

 

한국 복싱이 가장 강했던 60년 ~ 90년대 초까지 그 이야기

 

1. 왕년의 한국 복싱

 

그 당시 가난하고 가진거 없고 농사짓기는 싫은 사내들이 두 주먹으로 큰 꿈을 키우는게 바로 복싱이라는 운동이었다고 한다. 당시 인기 있던 복싱 매치는,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아저씨들이 끝이 없는 줄을 만들만큼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은, 그 인기만큼이나 한국은 복싱 강국이었는데 위의 사진을 보자. 1982년 OPBF 동양챔피언 밴텀급에 일본인 빼고 전부다 한국인이다.

 

즉, 저 중에 한명 빼고는 모두다 한국인이라는 말이다. OPBF단체로 말할것 같으면 동양에서는 공인된 알아주는 복싱 단체이다. 지금은 여러 동양단체가 많이 생겼지만 저 당시에는 OPBF 하나뿐 이었기 때문에 즉, 유일무이한 타이틀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2. 복싱 전성기 그 인기 수준은?

 

보통 세계챔피언 되는 코스가, 신인왕전부터 시작해서 한국 챔피언(KBC) > 동양챔피언 (OPBF) > 세계챔피언(WBC,WBA,WBO) 순서이다. 그 당시 한국 프로복싱이 강국이던 시절, 세계챔피언도 많이 나왔고 다시는 돌아오기 힘든 프로복싱 전성기 시절이라고 회고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른들 말로는 주말 저녁시간에는 무조건 지상파에서 복싱중계를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캐캐묵은 옛날이야기이다. 워낙에 볼거리도 다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