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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바라지오, 천재 혹은 미치광이였던 화가(카라바조, 회화, 자연주의, 병든 바쿠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는 자극적인 화풍으로 많이 알려진 화가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가 겪었던 아픔과 다사다난했던 삶의 배경이 있다. 천재 또는 미치광이라고 불리어졌던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바라지오를 알아본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바라지오, 천재 혹은 미치광이였던 화가


1.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


위의 작품은 딱봐도 얼굴이 찌뿌려지게 잔인한 그림으로 묘사 되었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는 유디트> 1599년 작이다. 아시리아가 베툴리아를 침략했을 때 유디트가 투항하는 척 적장을 방심시키고 밤에 그의 목을 자르고 도망쳐 나라를 구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보면 유디트의 영웅성보다는 살인의 끔찍함이 아주 강조되어 있다. 아주 잔인한 그림체와 묘사는 이 화가가 어떠한 생각을 했고 배경을 지녔는지 말해주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정서불안에서 비롯된 제멋대로인 성격과 천부적인 재능, 선술집에서의 폭음과 격렬한 싸움, 그리고 많은 빚과 음침한 친구들, 반복된 투옥, 살인 혐의, 수년간의 도주생활, 때 이른 죽음 등 아주 극적인 인생을 살다간 화가이다.

 2. 험난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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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회화 양식은 부분적으로 서툴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티가 많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참신하고 강력하며 대담한 자연주의로 채워,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고, 그 결과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라고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도시의 이름을 따 카라바조 라는 이름을 지었던 그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죽었고 어머니도 그가 젊었을 때 죽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모두 어렸을 때 돌아갔던 것을 보면 쉬운 인생은 아니었다.


3. 뛰어난 천재성과 작품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활동 초기엔 카라바조가 베네치아와 크레모나, 밀라노, 볼로냐를 거쳐 로마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고아였고 빚을 진 절망적인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기교가 뛰어났던 카라바조는 베네치아풍의 그림들을 스스로 익히면서 빛과 색채를 이해하게 되는데, 초기의 작품들은 수수께끼 같은 초상화가 많았다고 한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위의 그림인 <병든 바쿠스>이다.


카라바지오는 종교화들을 주문받아 제작했는데, 이 중 일부는 묘사가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도 한다. 또한, 1606년 카라바조는 결투를 벌이다가 상대방을 죽여 도주하게 되었다. 죄책감을 느낀 카라바조는 사면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로마로 가던 길에, 서른 아홉이라는 이른 나이로 열병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던 안타까운 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