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나라(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
중원통일을 달성한 진나라는 인구 2000천만의 명실상부 대제국이 된다.
자지달린 남자란 남자는 모두 군대에 복무하는 징병제를 그대로 유지한 진나라는
이론적으로 비상 징집시 최대 100만에 이르는 병력을 보유한다.
2.한나라 (기원전 206년 ~ 220년)
한나라도 진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을 보유했다.
한무제 때의 흉노로의 초원 원정은 엄청난 사업이었는데,
병사 한 명당 쌀 60가마니의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이때 한나라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4000만으로 추정된다.
후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전국민을 징집하는 징병제 대신
모병제가 실시되어 병력수가 줄으들게 된다.
그치만 농업인구는 증가하여
인구는 5600만에 이르고 이 시기엔
비슷한 시기 2세기 로마 제국(총인구 6천만 추정)의
전성기를 이끈 트라야누스 황제는
다키아 원정에서 이끈 병력수가 1차 전쟁때 15만, 2차 전쟁때 20만에 달한다.
3. 삼국시대
무너져가는 한 황실에서 실권을 잡은 조조
후한말기 국가 시스템이 무너져 인구가 급감해 병력
확보가 어려워지자
그는 군제개혁을 실시했다.
따라서 조조는 유랑민, 산적,
군벌들의 사병들을 모아 군호(軍戶, 민간인과는 구분되는 군인가족)에 등록시키고
군호에 등록된 가족은 대대로 1가구에서 1명의 병사를 제공하게 했다.
세병제로 조조의 위나라는 총 30만 명에 이르는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2년 동안만 군에서 근무했던 징병제와는
달리 세병제는 한 번 병사로 등록이 되면
20세~60세까지 계속 군에서 근무해야 했고,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대신하는 방식으로, 병사직이 대대로 세습됐다.
4. 서진 및 오호 십육국 시대.
조조 가문의 위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사마씨의
진나라는 손권 가문의 오나라 군대를 흡수시켜 총 70만 병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서진이 멸망하고 이민족 왕조가 중국북부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혼란기로 인구와 병력자원이 급격히 감소해 대체적으로 남조는
20만 명에서 10만 여명으로,
북조의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10만 ~30만 사이의 군세를 유지했다.
5. 수나라(581년 ~ 618년)
그러다가 한족화된 선비국가
수나라가 중국북부를 통일하고
중원의 운명을 걸고 통일전쟁을 할 무렵에는
동원한 군사가 518,000명에 이르렀다.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할 시 인구는 약 2900만으로 추정된다.
수나라를 건국한 수문제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경지를
천하의 모든 농민들에게 머릿수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해주는 균전제를 실시한다.
이로 인해 농업생산력이 크게 증가하고
강남지방의 농업발달로 인하여
세수확보가 늘었으며
백성들의 세금도 줄여줬다.
또한
강남지방과 화북지방을 있는 대운하를 건설하여 물물교류가 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이로인해 오랜기간 전쟁으로 인해 인구가
줄었던 중원은 다시 5000만에 육박하는 인구를
증가를 보인다.
수문제의 이러한 업적을 '개황의 치'라고 부른다.
덕문에 훗날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시
113만 대군(국내 학계 추정, 서구에서는 아직 연구하지 않음)
의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울 수 있던 것이다.
이 시기 동로마 제국
(인구 약 1500~1900만)의 헤라클리오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 전쟁에
동원한 병력은 약 8만. 사산조 페르시아(인구 1000만)도 비슷하다.
6. 당나라 (唐, 618년 ~ 907년)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 또한 수문제가 이룩한 국가제도를 그대로 이었다.
당나라의 기본군제는 군호(軍戶)에 등록된 병사들이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1년에 일정기간을 수도에 교대로 올라가 훈련을 받는 부병제였다.
국가가 안정을 취하기 시작한 당태종 무렵에는 총 병력 60만을 확보한다.
이 중 원정 가능한 병력수는 최대 30만으로 추정된다.
당현종 치세인 개원의 치 시기에 들어서는 인구가 약 6~7000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부병제에 속한 병사들의 질이 낮아지게 되자 모병제로 전환됐다.
이때는 한족만이 아니라 이민족 용병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 병력 60만에 이르렀으며, 고선지로 유명한 당나라 군대의서역 원정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지방군벌들의 쿠데타 이후로는 중앙정부의 병력수는 많이 줄어든다.
참고로 이 때 당나라와 싸운 이슬람 제국 아바스 왕조는 총 인구 2500만으로 추정되며야전군도 개전초기에 약 10만에 가까운 군대로 고선지의 군대와 맞섰다.
7. 송나라 (宋, 960년~1279년)
송나라는 당나라 때 반란을 일으켰던 지방 절도사 세력을 거울삼아,
절도사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군대를 황제의 휘하에 두었다.
송나라는 문치주의로 인해 경제가 크게 번영했다.
송나라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폐가 등장했으며,
수도 개봉은 인류 역사상 최로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였다.
이 때 중국의 인구는 1억명을 돌파하니, 이는 유럽 전체의 인구를 능가하는 수치였다.
송나라는 이런 막강한 경제력으로 징병제 대신 모병제를 실시했는데,
인종 시기 장부상 총 병력수는 126만에 이르렀다.
총 병력과는 별개로 실제 송나라가 운영할 있는 야전군은 요나라를 상대로 동원한 20만 대군이었다.
송나라 국방비는 재정의 70%를 차지했다.
이렇게 국방에 많은 투자를 해서 강력한 몽골군과 1년도 안돼 지도상에서 사라진 다른 나라와 달리 10년간이나 몽골과 전면전을 치를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동로마 제국(인구 1200만명)은 투르크와 싸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7만명을 운용했다.
8. 원나라 (1260~1368)
몽골족이 건국한 원나라의 군제는 기본적으로 세병제였다.
즉 국가에서 작성한 군호에 소속된 가족은
1호 마다 1명의 병사를 보낼 의무가 있었고,
한 번 뽑힌 병사는 60세가 될 때까지 군에서 근무해야 했다.
그러나 몽골 야만인들의 폭정과 학살로
중국의 인구는 6000만으로 급감했다.
그래도 장부상으로 병력수는 100만에 달했고
피지배민족인 한족과 굴복시킨 고려인을 마구자비로 징병하여
일본 원정에서는 14만에 달하는 규모를 운용했다.
이 때, 동유럽의 비잔틴 제국은 같은 십자군에게 수도가 함락당하고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몽골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됐으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한 국가라 하겠다.
9. 명나라 (1368년 ~ 1644년)
명나라는 군인 중에 일부를 땅을 경작하게 하는 이른바 둔전제를 실시했다.
때문에 인구가 1억 넘게 회복되는 전성기에 보유 병력수는 무려 300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게 모두 전투병력인 것은 아니고 대부분 경작을 하였으며 실제 근무하는 병사는 100만이었다.
영락제의 몽골원정에서는 신무기인 대포를 포함해
초원까지 25만 대군을 끌고 갔다.
비슷한 시기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티무르는 총 20만의 병력을 이끌고 명나라를 침공하고자 했으나 도중 병사한다.
그러나 환관들의 횡포와 무능한 황제의 집권, 그리고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말기에는 둔전제가 붕괴됐다. 그래서 몽골족과 왜구들의 침략에 무방비로 당해야만 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명나라 말기에는 병사들에게 땅 대신 은을 줬다.
이때 명나라가 한번에 투입할 수 있는 야전군 규모는 약 10~15만
비슷한 시기 오스만 제국(인구 3000만)은 사파비조 페르시아를 격파한 찰디란 전투, 신성로마제국의 빈을
포위한 빈 공방전에서 각각 10~12만의 군세를 보였다.
10. 청나라 (1644~1912)
인구 100만의 만주족은 대명전쟁을 실시할 때에 인구의 10%인 10만명의 병력을 보유했다.
이후 내몽골을 합병하고 정복한 소수의 한족들을 포함해 14만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공했다.
이후 중원을 차지하고 국호를 청나라로 정한 만주족은
이전의 몽골족처럼 무자비하게 한족들을 탄압하고 학살해서 이 때
중국의 인구는 약 3~4000만이 줄어든다.
그러나 강희제가 집권한 뒤 무자비한 탄압 정치를 그만두고
다시 인구는 1억 4천이 된다.
청나라의 군제는
만주족,몽골,한족으로 이루어진 팔기군이 있고
한족 지원병으로 이루어진 녹영군을 따로 두었다.
청나라의 전성기 인구는 2억을 돌파
팔기군과 녹영군을 합쳐 총 90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했다.
청나라의 야전군 동원 병력은
강희제의 외몽골 원정에서는 10만을
옹정제의 외몽골 원정에서는 20만
건륭제의 외몽골 원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치를 보여줬다.
청나라는 서양식 대포와 만주, 몽골 기병까지 동원하여
전쟁을 시작한 지 70년만에 준가르(외몽골)를 대량학살해 버린다.
비슷한 시기 오스만 제국은 유럽과의 전투에서 약 10~15만의 병력을 동원했다.
청나라는 건륭제 말년에 들어 국가 시스템이 망해
팔기군이 엉터리가 된다. 그래서 이 때쯤되면 청나라는 망할 때까지 엉터리 군사 ㅇ누용이 된다.
반면 시민혁명으로 국민개병제가 실시되어 전국민이 국뽕에 취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인구 4000만)은 러시아 원정에서 비록 당했지만 60만 대군을 운용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후 서구 세계는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생산력과 물량을 보여준다.
19세기, 인구 2000만의 미국이 남북전쟁(1861~65)에서
쏟아 부은 총 병력수는 북부, 남부 총 합쳐 300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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