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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캐리비안 해적의 모델이 된 해적, 검은수염 블랙 비어드. (ft. 검은수염 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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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 해적의 모델이 된 해적 블랙 비어드.


우선 블랙비어드의 신상을 알아보자.


블랙비어드의 본명의 에드워드 티치로 알려져있지만 확실치는 않다고 전해진다.

 

왜냐면 해적들은 본명을 전혀 안쓰기 때문이라고


태어난 년도는 1680년에 잉글랜드 브리스톨로 추정되고있다.


먼저 만화 원피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에드워드 티치가 원피스에 나오는 그 티치가 맞냐고 


물을 수가 있겠는데, 맞다. 






검은 수염 티치는 블랙비어드를 모티브로 만든 케릭터이다. 


모티브만 따온게 아니라 그의 해적 일대기를 시나리오에 그대로 옴겨 근접하게 따라갔다고 한다.


아무튼 블랙비어드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일대기는 알려진바가 없어도 


성인이 된 이후의 행적들은 찾아볼 수 있다.





블랙비어드는 1710년~1713년 3년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절에 자메이카를 거점으로 하고있던


사략선에 탑승하게 된다. 여기서 사략선이란 국가로부터 특허장을 받아 개인이 무장시킨 선박을 말하는데


교전자격까지 부여했기에 사실상 약탈을 했다는 점에서는 해적하고 비슷하나 단지 국가의 권한을 받은


합법적인 준 해적이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후 전쟁이 끝나면서 돈벌이가 없자 생계를 위해 


1716년에 뉴 프로비던스 섬으로 이동한 블랙비어드는 같은 장소를 


거점으로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 벤자민 호르니골드의  부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첫번째 해적인생의 출발점이되었다.


이 해석전에서 근무하면서 벤저민 호르니골드의 총애를 받아 프랑스의 슬루프 선 한대를 위임받으며


점차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다가 1717년에 독립을 자처해 조직이 두개로 갈라졌고 완전하게 자신의 한 영


역을 차지하게되었다고 한다.


블랙비어드가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건 이때즈음이었는데,


1717년 11월 18일 마르티니크 섬 근해에서 낭트를 출발한


프랑스의 대형 노예선 콩코드를 붙잡고 이 배를 앤 여왕의 복수호라고 짓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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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Anne 's Revenge - 앤 여왕의 복수호)


당시에 마르키니트 프랑스 총독부의 기록에 따르면 블랙비어드는 12문과 8문의 대포가 장착된 소형 선박을


지휘하고 잇었고 250여명의 선원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이후 1년간 그 짧은 기간에 주요 항로에 왔다갔다하는 해적이든 상선이든 군함이든 나라도 가리지않고


 잔인하게 털털털 먼지도 안나오게 노략질을 했는데,


1년동안 약탈해서 번 돈만 우리나라돈으로 약 150억가량이었으니 어마어마 했다는걸 알수 있다.


주로 북아메리카 대륙과 대서양 연안, 그리고 서 인도 제도를 주무대로 삼았는데 당시 30문의 대포를

 

장착한 영국군의 군함 스카보로호를 격침시켜 일대 스타가 되버린다. 


블랙비어드는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가급적 피해없이 빨리 끝내기위해 항복을 유도하는 전술을 많이 구사했는데


만약에 항복안하고 계속 버티면 그냥 한줌의 재가 될때까지 공격했단다. 적이 도망가면 끝가지 쫓아가서


응징했고 전멸 시켰다고 한다. 동료들이 치를 떨만큼 잔인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블랙 비어드가 단순 무식한 인물은 아니었다.


멀리서 상대방 배의 국적을 먼저 확인하고


잽싸게 그 배의 국적과 같은 깃발을 달아 안심시킨뒤 밤이나 새벽이 되면 블랙비어드 깃발로


바꾸고 바로 상대방의 허점을 놀리면 약탈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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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블랙비어드의 심벌.


이윽고 블랙비어드는 바하마와 캐롤라이나 두곳을 거점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뉴 프로비던스 섬을 중심으로 한


카리브해 영역을 모두 장악하기위해 해적 민주주의? 


공화국(Privateers Republic) 동맹을 창설하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이 때 왜 영국은 멀뚱히 보고만 있었을까?


다 사정이 있었다. 당시에 영국은 해적이 뭔짓을 하던 해결할만한 여력이 안됐기 때문이다.


영국을 노리고 접근하던 프랑스와 스페인을 견제하고 있던터라 해적까지 신경을 쓸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당시 영국의 총독이었던 찰스 에덴은 해적들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


우리일을 마칠때까지만 조용히 있어달라고 말이다.


사실 이런뜻 외에도 해적들을 사실상 사략선으로 인정해서 만약 프랑스나 스페인놈들이 쳐들어오더라도


같이 영국편에서 싸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어찌되었던 영국 해적들인데 같은 나라 치겠냐 그런 뜻.


그런데 이 블랙비어드의 스케일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갔다.


결과적으로 죽음을 자초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항 봉쇄 사건이 그 예인데, 자신들의 통로를 지나가는 


모든 배들은 가리지않고 통행료를 받아 이득을 챙긴 것도 모잘라서 정박한 배를 나포하거나 인질을

 

만들어 몸값까지 챙겨먹게되니까 영국 왕실은 기어코 블랙비어드의 머리를 자를 계획을 세워. 


해적주제에 인질을 상대로 왕실과 딜 까지 할정도로 너무 커진 싹을 지금이라도 잘라야겠다고 생각한 것.


그 선봉에 나선게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였던 알렉산더 스포트우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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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비어드 포획 계획을 세우고 영국 정예 해군요원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영국 해군의 로버트 메이너드 대위가 왕실로부터 두 척의 배를 받아 전장의 지휘를 맡았다고 한다.


1718년 11월 22일 운명의 시간이 다오고 블랙비어드의 주거지였던 오크라코크를 기습하게된다.


이 당시 영국 해군이 얼마나 빡돌앗엇는지 순식간에 블랙비어드의 배들이 좌초되기 시작하고


도주하던 마지막 배 마져도 해군의 포탄에 돛을 잃어버리자 블랙비어드는 최후의 육탄전을 대비했다고 한다.


영군 해군들과 블랙비어드 해적단과의 육탄전은 정말 치열했다고 하는데. 


끝내 붙잡힌 블랙비어드는 메이너드 대위의 칼에 의해 목이 잘려 저승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때 블랙비어드의 몸은 칼로 20군데나 베어있었고 다섯방의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최후의 발악을 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마지막까지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고 떠났다고 한다. 


블랙비어드가 떠난지가 벌써 수백년인데 아직도 그는 영화에서 만화에서 또는 게임, 문화 산업을 통해


아직도 큰 상품가치로 존재하고 있다. 예로 주류산업 한가지만 보자면,


IMG_0713.jpgBlack-Beard-Spiced-Rum-tasted-Neat-for-review-purposes-photo-property-of-Cheri-Loughlin-The-Intoxicologist.jpgcaribbean-islands-4.jpgIMG_0498.JPG


블랙비어드를 상품화 시킨 제품들은 정말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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