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나치 최고의 저격수 브루노 스투쿠스



7fK8vhx3X-s.jpg

브루노 수트쿠스, 스나이퍼 ; 동부 전선에서 시베리아까지






1924년 5월 동프러시아의 쾨니흐스베르크 근처 탄넨발트 


(현재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의 츠칼로프스크)에서 


리투아니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브로니우스 (애칭 브루노) 수트쿠스가 태어난다.


리투아니아 혈통의 브루노는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는 없었으나 금발과 푸른눈을 가진 발틱 혈통의 꼬마 브루노는 


나치의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유겐트에 입단이 허락된다.








c4be51670504.jpg

독일군 신병 브루노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난 브루노는 1940년 16세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 


독일 시민권은 아니나 '독일인 대우' 증명서를 받게 된다.


뛰어난 신체 조건과 참을성, 주의력등에 주목한 그의 훈련부대 지휘관은 


그를 빌니우스의 저격병 학교로 보내고 브루노는 최우등으로 모든 과정을 끝낸다.







1-204-768x524.jpg







1943년 동부전선에 배치된 그는 뛰어난 저격 솜씨를 발휘, 


배치 1년만에 확인된 숫자만 70명의 소련군 장교 및 병사들을 사살한다.


철십자훈장 1등급, 2등급을 받은 후 나치 독일군 저격수 최고 영예인 '저격 금장'을 수여 받는 등 


1945년 독일의 패전까지 총 209명을 저격, 사살한다. (확인된 숫자)








Bruno_Sutkus.jpeg









이는 2차대전 나치 독일의 저격수 중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며 


'붉은군대 장교 사냥꾼'으로 불리며 당시 소련군의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치 독일이 패전하자 소련군에게 잡히면 어떤 대접을 받을지 잘 알던 브루노는 


미군 점령지대까지 도보로 도주, 미군에게 항복하고 포로 생활을 하게된다.










Bruno_Syutkus.jpg






하지만 브루노에게 관심이 없던 미군은 1개월 후 브루노를 석방하고 브루노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소련군 점령지역인 동독의 라이프치히의 어머니 집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당연히 라이프치히의 소련군 정보부대는 브루노에게 관심을 갖게되나 


브루노 어머니는 소련군에게 뇌물로 꼬냑 1상자와 금붙이 몇 개를 주고 


자신의 아들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가짜 신분증으로 영원히 라이프치히에 살 수는 없는 일, 


브루노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리투아니아로 가기로 한다.








300015-109775729130301-362461454-n_imagesia-com_8txf_large.jpg

동부전선의 브루노






리투아니아 출신임을 인정받아 리투아니아 거주증을 발급받은 그는 


현지 농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되지만


다시 KGB의 전신인 소련 비밀경찰 NKVD의 주의를 끌게된 브루노는 이곳에서도 


독일에서 가져온 금은 장식품과 돈을 뇌물로 사용, 감시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1949년 리투아니아 전역에서 비밀경찰에 의한 반소련 인사 검거 및 시베리아 추방 광풍이 불게되고 


브루노의 사실혼 부인 토니 포벨라이티스와 두 아이는 검거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된다.









13-big.jpg

독일군 간호 장교와 사진






브루노는 추방령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토니와 자식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시베리아의 


집단 농장으로 이주하여 노예와 같은 노동에 시달린다.


소련 집단 농장의 노동자는 신분증을 압수 당한 채 노동만 해야하는, 관에 들어 가야만 


그곳을 나올 수 있는 현대판 노예와 마찬가지 였다.


종일 술에 취해 있고 게으른 러시아인들과는 달리 열심히 일한 


브루노는 집단 농장의 가축 기르기 조의 조장까지 되며 집단 농장 생활에 익숙해진다.








4cfbc705f4c82c3754b5d187159.jpg

1950년대의 이르쿠츠크





1956년 이르쿠츠크의 KGB 장교는 브루노를 소환, 


2차대전 시 브루노가 독일군 그레즈 장군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고 


브루노는 총살형에 처해질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집단 농장에서의 모범적인 생활과 자발적으로 가족을 따라 시베리아로 이주한 점, 


흐루시쵸프의 수용소 해방 등의 소련 내부의 온건 정책 등이 반영되어 브루노는 무사히 석방된다.


브루노와 가족들에게 신분증 다시 주어지고 


그들은 근처의 유일한 대도시인 이르쿠츠크로 이주, 브루노는 인근 탄광의 광부로 일을 하게 된다.


1969년 그의 사실혼 부인 토니와 아이들의 시베리아 추방령이 해제되어 그들은 함께 리투아니아로 돌아갔으나 정식 혼인 관계가 아니란 이유로 브루노에게는 리투아니아 거주가 허락되지 않는다.






img_219676_46992.jpg

자신의 저격총의 총기 수입 중인 브루노







혼자 시베리아로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에 들린 브루노는 모스크바의 서독 대사관을 찾아 그와 그의 가족에게 서독 시민권을 줄 것을 요청하나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한채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온다.


이르쿠츠크의 KGB는 이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는 1991년 소련 해체 까지 출국이 금지된다.


1971년 리투아니아 거주가 허락되고 가족에게 돌아온 브루노는 농사를 지으며 서독 시민권을 기다린다.








28556_0_tasse_bruno_sutkus-scharfschaetze_wehrmacht_deutscher_soldat_ostfront_98k_karabiner_zielfernrohr_farb_foto__bild_fadenkreuz_zweiter_weltkrieg_deutschland_militaecr_becher.jpg

브루노 기념 머그 상품






하지만 그가 독일 시민권을 받은 것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로 그 땐 이미 아내 토니는 세상을 떠난 상태 였다.


1995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브루노는 2003년 80세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