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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당뇨병을 치료하는 '인슐린'은 어떻게 발견이 되었을까? (프레더릭 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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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밴팅





토론토 대학의 프레더릭 밴팅 박사는 어린 시절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소아 당뇨로 잃었다.


그는 당뇨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래서 이 병의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필요한 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가능할 것 같은 어떤 생각이 계속 떠돌고 있었으나 


그걸 실체화 하기 위한 최종 판단을 내리기엔 너무도 모호했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어느날, 잠깐 조는 사이에 밴팅 박사의 머리로 다음 같은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개의 췌장과 연결되는 췌관을 묶는다. 6 - 8주간 기다린다. 


적출한 후 추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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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팅과 베스트 (왼쪽)




잠에서 깬 밴팅은 즉시 이 아이디어를 종이에 적은 후 자신의 윗 사람인 신경생리학자인 밀러 교수에게 알렸고 밀러 교수는 토론토 대학 생리학 과장인 존 맥클라우드 교수에게 밴팅을 소개한다.


1921년 초, 맥클라우드 교수는 자신의 지도 학생 중 하나인 찰스 베스트를 밴팅에게 붙여주며 동물 실험을 허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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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팅과 베스트는 실험용 개의 췌장을 제거한 후 췌장 추출물을 다시 주사하는 방식으로 실험용 개가 계속 생존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 췌장에서 추출한 성분이 바로 인슐린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췌장 추출물을 정제하여 인슐린을 실험 가능한 양을 만드는 것. 


화학자의 도움이 필요한 이 작업에 화학 전공의 제임스 콜립이 합류한다.


인간에 대한 역사적 첫 실험은 1922년 1월 소아 당뇨로 당뇨 혼수에 빠진 


14세 레너드 톰슨에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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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치료에 대한 당시 캐나다 신문의 보도





톰슨의 부모는 마지막 희망은 밴팅 팀이 개발한 인슐린을 주사하는 것 이었고 결과는 놀라웠다. 


당뇨 혼수에 빠진 환자를 인슐린 주사로 깨운 것이었다.


이후 레너드는 정기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정상적인 삶을 살다 27세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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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환자는 밴팅의 친구인 의사 조 질커스트 박사로, 


당뇨로 뼈만 남은 채 죽어가던 그 역시 인슐린 주사로 회복하게 되었다.


질커스트는 이후 밴팅의 연구에 전폭적으로 협력하며 죽을 때까지 인슐린 연구에 동참한다.






1923년 밴팅과 맥클라우드는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다. 


만 32세의 밴팅은 최연소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이다.


그 후 밴팅은 영국 조지 5세로 부터 기사 서훈을 받았으며 런던 왕립학회의 회원이 된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밴팅은 의무부대 연락장교로 자원 입대하여 


영국과 캐나다를 왕복하다 1941년 뉴펀들랜드 인근에서 항공사고로 사망했다. 만 49세.


2004년 캐나다 국민이 뽑은 '위대한 캐나다인' 중 4위에 뽑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