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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석가탑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정형기 석탑, 감은사지, 고선사지, 불국사)


석가탑. 10원짜리 동전에서도 새겨져 있듯이 우리에게 친숙한 고대 건축물 중에 하나이다. 이 석가탑은 지금 봐도 대단한 자태를 뽐내는데 그 당시에는 어땠을까? 대단하다. 석가탑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석가탑이 가지는 의의

 

1. 석가탑이 가지는 의의

 

석가탑이 가지는 의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석가탑 이후 건립되는 우리나라 석탑의 모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인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이나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신라의 분황사 모전석탑은 초기적인 형태로 아직까지는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삼층의 석탑 형태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아직까지는 목탑의 양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었거나, 전탑과 같은 형태로 석탑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통일 직후인 680년대부터 경주에서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등장하는데,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2. 전형기 석탑의 등장

 

전형기 석탑들은 삼국시대의 석탑과는 다른 3층의 형식, 그리고 이층의 기단 등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초기적인 형태였던 까닭에 석탑의 규모도 거대하고(10미터 내외) 석탑의 건립에 사용되는 석재의 수량도 제법 많은 편이라고 한다.

감은사지와 고선사지 석탑은 각각 80매가 넘는석재가 활용되어 석탑을 쌓았다. 하지만 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석재의 수량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겨우 22매의 석재만으로 석탑을 쌓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학계에서는 정형기 석탑이라고 부른다.

 

 

3. 불국사 석가탑

 

전형기 석탑과 불국사 석가탑을 보면 확실히 석탑이 날씬하고 단정해졌으며 석재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규모의 축소도 있지만 수십년만에 기술적으로 확실히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국사 삼층석탑은 이러한 석탑의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즉, 8세기 중엽이 되면 석탑이 전체적으로 날씬해지며 각 층을 쌓을 때 1매의 큼지막한 통돌을 이용해서 이전의 복잡한 석재결구법은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은 형태는 이후 조선시대가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나라 석탑의 기본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따라서 8세기 중엽에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석탑이 정형화되고 그 첫머리에 있는 것이 석가탑 이니 만큼, 석가탑은 그 아름다움과 비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석탑의 전후를 나누는 기념비적인 석탑이라는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