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국가가 없었던 핀란드, 그 역사와 발전 과정.


xw_1176390.jpg




올해로 독립한 지 100년이 된 북유럽의 핀란드 (1917년 12월 6일)




finland_main_en.jpg





19세기 초 핀란드인들은 한번도 자신들의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이 


700 여년 이상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1808 - 1809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스웨덴은 


종전 협상의 결과로 핀란드의 지배권을 러시아 황제에게 양도한다.


핀란드에는 러시아 황제의 개인 영지로 '핀란드 대공작령'이 설치되었고,


러시아 황제가 '핀란드 대공'을 겸하며 핀란드 총독을 임명하여 통치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보통 러시아 귀족이 임명되는 '핀란드 총독'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인 지위였으며 핀란드인들은 완전한 자치권을 보장받아 핀란드 의회와 헌법, 핀란드 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 국기를 사용하나 핀란드어가 공식언어로 인정되었고 핀란드 군 창설과 함께 독자적인 징집체계도 갖추었으며 자치 정부와 함께 러시아의 화폐인 루블이 아닌 핀란드의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 사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 제국과의 관계는 친밀하고 우호적이었으나 언제까지 이런 세월이 계속될 수는 없는 법, 19세기 말이 되자 러시아의 핀란드에 대한 입장이 변하기 시작한다.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탄압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으며 전제군주의 독단으로 지배되고 있는 러시아와는 달리 헌법을 가지고 법치로 자치권을 누리는 핀란드는 러시아로서는 불온하고 위험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Nikolai_Bobrikov.jpg

니콜라이 보브리코프 총독





1898년 핀란드 총독에 보브리코프 장군이 부임하며 핀란드는 자치권을 잃게되는 위기를 맞았다.


보브리코프 총독은 상징적인 자리이며 명예직이었던 핀란드 총독직을 실권이 있는 직위로 만든 후 핀란드의 자치권을 없애며 분리독립 움직임을 탄압하는 선언문을 발표한다.


핀란드는 자치권을 가진 핀란드 대공령이 아닌 러시아의 일반 주와 동등한 취급을 받게되며 핀란드에서 징집한 병사는 러시아 국내의 여러곳으로 보내 복무하게 하였다.





R8CiopN-CXI.jpg

러시아화에 대항하는 핀란드를 그린 핀란드 화가 에에투 이스토의 '침략' 

핀란드 헌법을 든 여인을 공격하는 독수리는 러시아를 상징한다.






황제 니콜라이 2세는 50만 이상의 서명을 받은 핀란드인들의 청원에도 아랑곳 않고 보브리코프 총독에게 힘을 실어주며 핀란드를 제국의 일반 지역으로 만들려 했다.


핀란드인들 사이에서도 자치 독립을 주장하는 '헌법수호파'와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며 러시아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유화파'로 나눠졌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헌법수호파'의 세력이 강해졌다.


그 사이 보브리코프 총독의 '러시아화 정책'으로 핀란드어를 공식어에서 탈락시키고 러시아어만을 공식언어로 인정하게 되었고 교육 체제도 러시아와 동등하게 바뀌었으며 언론 검열 및 친러시아 언론의 강화가 시행되었다. 또한 핀란드 의회에 러시아인 의원들이 선정되었으며 총독은 핀란드에서 전권을 행사하며 핀란드인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다운로드.jpg

보브리코프 총독 암살 사건 그림



하지만 핀란드인들의 참을성엔 한계가 있는 법. 1904년 핀란드 의회의 의원의 아들인 에이겐 샤우만이 권총으로 보브리코프 총독을 사살하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권총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20px-Grave_of_Eugen_Schauman.jpg

에이겐 샤우만의 묘지



이 사건으로 핀란드의 러시아화는 늦춰졌으나 핀란드에겐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바로 1917년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Lahti-Saloranta_M-26_in_position.jpg

핀란드제 라흐티 살로란타 M-26 기관총을 쏘고 있는 겨울전쟁의 핀란드 병사




러시아 제국의 소멸로 독립을 얻게된 핀란드는 1939년 핀란드를 다시 소련에 합병하려 


스탈린이 일으킨 '겨울전쟁'에서 승리하며 러시아와의 완전한 결별에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