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양식은 무엇일까? 로코코 양식이란 말은 어디선가는 많이는 들어보았지만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히 모른채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로코코양식이 무엇이고 그 태동과 발전의 역사에 대해서 끄적여 본다.
로코코 양식이란 무슨 뜻을 가지며 어떠한 문화를 남겼을까?
1. 로코코양식이란?
로코코양식은 어떻게 생겨 나게 되었을까? 그것에 대해서 알자면 우선 루이14세를 알아야 한다. 루이14세의 고전주의와 로코코양식은 많이 맞물려 있는 시대상황이기 때문이다.
로코코양식은 요컨대, 그냥 루이 14세가 죽어서 만들어진 화풍이라고도 한다. 루이 14세는 귀족들을 철저히 억압했다고 한다. 루이 14세의 아버지때까지만 했어도 왕권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루이 14세는 어린시절, 귀족들의 수 많은 반란과 횡포 속에 숨어서 살았어야 했다는 가정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이후, 루이 14세는 절대왕권을 가지게 되었지만 귀족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던 어렸을 때의 과거를 떠올리며, 귀족들을 철저히 억압해 나아갔다.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식 '고전주의'는 그저 루이 14세의 취향이 100% 흡수된 예술 양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고전주의 시기의 귀족들은 그들의 문화라던지 화려한 취향이 철저하게 억압을 당했다.
2. 로코코양식 화풍
아래의 그림과 같이 화려한 프랑스 귀족의 문화는 없고 역사의 한 장면이나 영광스러운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들을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격식과 딱딱한 색깔의 조합은 귀족들이 바라는 취향은 아니었을 것 같다. 확실히.
루이 14세가 죽고 난 뒤(1715)에 루이 14세가 워낙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 후손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에 먼 친척이던 귀족 La Regence의 섭정기(1715-1723)가 있다가 루이 14세의 증손자였던 루이 15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유행하던 프랑스의 예술사조가 바로 로코코 양식이라고 한다.
로코코양식은 프랑스식 고전주의와 완전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색채의 다채로움부터 역동적인 사람들의 모습까지 말이다. 역사화와 종교화가 아닌 아주 향략적인 주제이며, 상당히 여성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루이 14세가 고전주의를 좋아했던 이유는 양식 자체가 상당히 권력지향적이고 남성적이었기에 절대왕정 체계를 강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는데 이와는 상당히 대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니체는 18세기를 보며 '여성성이 지배한 사회'였다고 말한다. 몽상적이고 재기발랄하고 자유롭게 가장 장신적인 것을 향유하던 시기가 바로 로코코양식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로코코는 '상당히 화려한 혹은 장식적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로코코는 원래 가구 등의 장식 예술에서 출발한 예술양식인데, 곡선미가 아주 잘 나타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모든 부분들에 대해서 디테일이 매우 섬세하고 우아하고 여성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귀족들이 좋아했던 가구들이 조개, 조약돌의 모양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양은 아주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보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이 들게하는 리듬감 있는 장식이었다고도 한다.
루이 14세가 죽고나니깐 귀족들이 그동안 억눌려있던 자신들의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귀족의 취향이 잔뜩 들어있는 양식인 로코코 양식이 태동하고 발전하게 된 것이다. 루이 14세가 죽고나서 루이 14세의 억압적인 정치때문에 다른 나라로 도망갔던 귀족들이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게 됐고 돌아온 귀족들로 인해 프랑스의 가구 주문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예술가들은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깐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장식 예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로카이유 문양(작은 조약돌, 조개를 지칭)에서 차용된 로코코 양식이 자연스럽게 태동하게 되었다.
루이 14세 시기에 만들어진 프랑스식 고전주의는 아카데미를 통해 루이 14세가 만들어 낸 것이지만, 로코코는 미술 시장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예술은 세속적일 수 밖에 없다는 특징을 또한 가지고 있다. 이 시대의 정신은 무절제와 자유이다. 로코코양식의 그림들을 보면 당시의 귀족들이 얼마나 향락적으로 살았는지 잘 알 수 있다.
로코코의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와토와 그를 계승한 프라고나르의 작품을 보면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져있는 귀족들의 미묘한 분위기만이 존재한다. 그 한순간의 상황과 묘사가 바로 주된 그림인 것이다.
그냥 사랑들이 행복한 분위기에 취해 있는 그림들. 이러한 그림들은 별 생각 할 것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세속적인 로코코 양식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
또한, 로코코의 전성기를 이끈 부셰의 작품을 보면, 더욱 더 향락적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색채미학을 통해 여성의 누드를 더욱 더 아름답게 표현하였고 이를 통해 시각적 자극을 더욱 주었으며, 자신의 욕망을 자유롭게 실현시켰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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