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

대항해시대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한 '괴혈병'(비타민c, 제임스쿡 선장, 괴혈병 증상)


괴혈병은 무엇일까? 많이는 들어봤는데 어떤 병인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괴혈병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 대항해 시대의 시작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거기서부터 괴혈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 괴혈병의 파괴력

 

 

1. 대항해시대의 역사

대항해시대 사람들의 얼굴모습은?(확인)

 

과거 대항해시대 사람들한테는 항해는 곧, 죽음 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 때는 대륙간 항해가 주 목적이어서 몇달 동안 배안에 갇혀서 육지가 나올때까지 항해만했기 때문이다.

 

배도 사진이나 돛 때문에 커보여서 그렇지, 위 사진에 있는 배는 대표적인 범선인 캐러밸이라는 건데, 실제로는 200톤 안팎의 그리 크지는 않은 선박이다.

 

대항해시대의 배

 

2. 대항해시대의 고난

대항해시대 주식량 모습은?(확인)

 

대륙간 이동을 할 때 그 망망대해를 저 정도 크기로 건너고자 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배 수량만 중형 유람선 크기이다. 이런 고만고만한 배에다가 수개월치 식량과 식수를 채워넣고 다녔는데, 평범하게 생각하는 수준으로도 당연하게 힘들었다.

 

그런데 전투식량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해가겠지만 이 시절에는 밀가루를 이용해 건빵같은 비스켓을 만들어서 비축하고 고기랑 양배추 소금에 절인 과일 피클 이런 것을 그냥 수톤씩 배에 비축해 놓고 다녔다. 

 

3. 열악한 환경

 

애초에 병조림과 통조림 개념은 이 시대가 끝나고 반백년쯤 지나서 개발된 개념이었고, 주식이던 육류나 비스켓은 보존을 위해 수분기를 0%까지 극한으로 없앤 물건이라 매우 딱딱해서 일화중에도 "말린 대구를 비상식량으로 사용했는데 곤봉 대용으로 써도 될만큼 딱딱했다" 도 있고 프랑스군 일화중 "독일군이 참호에 쳐들어 와서 급히 바게트를 던졌는데 맞고 죽었다."가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닐 정도 였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해서 악영향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니까 당연히 정상일리가 없었고 항해는 그만큼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발생하게 된 병이, 괴혈병이다.

 

4. 괴혈병의 발현

관련 이미지

 

잇몸이 심하게 붓고 피가나서 이가탄 인사돌을 권하고 싶을만큼 위험한 상태가 되는데,대중적으로 알려진 괴혈병 증상은 이거지만 사실 이거는 가장 심각해졌을 때 증상이고 초기 증상은 무기력, 나른함, 우울감, 식욕부진, 피부출혈 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 뱃사람들은 긴 항해로 지쳐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다가 사태가 심각해 지니까 방법을 찾을라 했는데 예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기술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파악하지 못했을테니깐 말이다.

 

5. 비타민C의 결핍으로 인한 병, 괴혈병

 

애초에 괴혈병은 비타민C 결핍으로 인한 병이었다. 당시 오래 먹기 위해서 소금으로 재워둔 고기와 채소류등은 비타민이 자연적으로 파괴되도록한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식인 밀가루 건빵같은 것도 비타민이 존재할리가 없었다, 식수도 장기화된 항해로 오염되는 바람에 술을 빚어서 다니거나 식수없이 술만 먹는 일이 허다했다.

 

사실 15세기 이전 대항해시대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이런 문제가 거의 없었다. 애초에 길어봐야 1,2주 항해가 전부였고 식량도 경유지나 항구에서 해결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6. 괴혈병으로 인한 피해 사례

 

괴혈병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사례중에는 영국을 꼽을 수 있는데, "해가 지지 않는나라","동인도 회사","식민지배" 등으로 미국의 등장 이전까지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해군국으로 이름을 날리던 영국은 괴혈병의 최대 수혜자중 하나인데이기도 하다.

 

일례로 1780년대 영국 수병 1600여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에서 60여명만 전투로 사망했고 나머지는 모두 괴혈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1740년에는 아메리카 식민지 원정을 위해 조지 앤슨 제독의 함대에 타고 있던 군인, 승무원 포함 1955명은 마젤란, 프랜시스 드레이크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사람들은 4년의 항해동안 절반 이하인 634명만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전투 손실이 단 4명이고 열병이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320명 그리고 총 항해인원의 절반가량인 997명은 모두 괴혈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대항해시대에는 가히 말라리아, 콜레라, 흑사병 급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괴혈병은 커녕 비타민이라는 개념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미신에따라 춤을 추거나 땅을 파서 머리를 묻거나 신맛이 해결한다는 속설에 따라 황산을 마시거나 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써봤지만 당연히 효과는 없었고 배를 깨끗하게 하고 선원들을 자주 씻게해 병을 막아보려 했으나, 다른 병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유독 괴혈병만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이를 극복한 사람은 있었는데 제임스 쿡 선장이다. 이 사람은 신선한 과일, 채소를 먹으면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한 사람이다. 1768년, 72년, 76년에 거친 세차례의 긴 항해에서도 이 사람의 배에서 괴혈병으로 죽은 사람은 1명도 나오지 않았다. 항해 때 마다 양배추를 가득 채우고 자우어크라우트(독일식 김치)를 3톤가량 채워넣고 항해했고 선박 내부를 항상 깨끗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1740년대에 영국 해군 소속 의사였던 제임스 린드 박사는 괴혈병에 심각성에 대해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이 사람은 수년동안 괴혈병 환자를 나눠 특정 음식을 먹인 뒤에 완치가 되나 안되나 확인하는 간단한 실험을 반복해서 1950년대 쯤 레몬과 오렌지가 괴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이를 논문으로 작성해서 1753년에 학계에 발표하게 된다.

 

영국 동인도회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하지만 당시 영국의 의학계와 해군은 "겨우 그걸로 병이 치료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믿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 해군은 "그런 애들 줄려고 비싼 오렌지 살바에 신병을 쓰겠다"라고 못박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엔 비타민을 알게 되고 그 이후론 죽게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40년 뒤 1790년대 영국은 참다 못했는지 해군에 라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오렌지나 생으로 먹기 힘든 레몬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쌌고 보급도 편했으니 말이다. 당시 해군은 지금의 해병대나 특전사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강하고 터프한 남자가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라임과 채소를 배급하며 즐겨먹던 영국 해군을 다른 나라에서는 "라이미"(limey) 라고 비웃었다고 한다.